해파랑길

해파랑길 후기


[걷고있어요] 자유, 그리고 인생 3막을 향한 30일간의 도전 -3-

  • 김동철
  • 16-09-18 19:57
  • 조회수 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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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포항 구간을 지나며


월요일(912) 경주 감포항에는 비가 내렸다.

이틀 전 울산에서도 비가 오긴 왔지만 길을 떠나는 시간인 오전 9시 전에 그쳐 오히려 상쾌함 속에 멋진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포-양포-구룡포 구간(12, 13코스)에서의 비는 달랐다. 오후 3시까지 때론 약하게, 때론 강하게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거기에다 바다로 통하는 개천물이 불어나 코스가 끊기는 바람에 파도가 몰아치는 수심 1m 너비 5m가량의 지점을 간신히 건너기도 했고, 거친 바람으로 파도가 해안 코스를 덮치는 바람에 길을 찾느라 20여 분간 헤매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 32.5km의 종주를 끝냈을 때 온 몸은 파김치가 됐다. (그리고 저녁엔 숙소인 구룡포의 모텔 방이 4-5초간 흔들릴 정도의 지진도 경험했다)

 

왜 걷는가.’

이런 악조건 속에 길을 걸으며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운 화두였다.

38년 전 후배와 함께 서울-부산 종주를 시도했을 때 둘이 시골 밤길을 걸으며 종종 나눴던 대화도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었다. 젊었던 데다 다소 맹목적인 종주 결정이었던 만큼 당시 해답은 간명했던 것 같다. “길이 있으니까 걷는다.”

그러나 이번 종주에서는 달랐다. 어느 정도 인생을 마무리하고 다음 삶을 준비한다는 나름 거창한 포부를 앞세우고 시작한 종주여서인지 오히려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자기 과시, 건강, 재충전, 현실도피.  인내심, 색다른 도전, 서민의 삶 확인

머릿속이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거친 파도 소리는 걷는 내내 지친 나를 압도했다.

에라 모르겠다. 아직도 걸어야 길이 한창 남았는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 포기가 차선의 길이라고 했던가. 화두를 걷어차 버리자 흥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대학시절 즐겨 불렀던 김민기의 친구’의 흥얼거림이 이날 해변을 걷는 내내 화두 대신 파도 소리와 함께 했다.

 

경주-포항 종주를 마무리한 금요일(916) 오후 포항구간 마지막 지점인 화진 해변에서 또다시 비를 만났다. 그리고 토요일 동해안 지역에 많은 비가 쏟아져 종주 후 처음으로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다. ‘병참대장인 집사람은 “300km를 넘어서니까 하늘이 쉬면서 지친 다리를 풀라고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계획이 틀어진 게 다소 아쉽긴 하지만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고, 온천욕과 영덕대게를 즐기며 보낸 하루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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